[스크랩]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1...현각
저자인 현각 스님은 1964년 미국 뉴저지 주 라웨이에서 태어났다. 가톨릭 전통이 강한 가정에서 아홉 형제 중 일곱 번째로 태어났으며 다른 형제들과 같이 가톨릭 중고교를 다녔다. 어머니 패트리샤 뮌젠은 아일랜드계, 아버지 조지프 뮌젠은 독일계 미국인으로 뉴욕 포덤 대학교(Fordham University)를 다니면서 생화학을 전공했다. 미국 이름인 폴은 세례명이다.
1983년 9월 예일 대학교 입학해서 서양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위대한 철학자들의 말과 생애를 공부했고, 재학 시절 대학 3학년때 까지 당시 소련과 무기생산 경쟁을 하던 레이건 정권과 비도덕적인 남아프리카에 투자하는 대학 재단에 반대하는 운동도 열심히 했다. 이후 운동권 활동을 그만두고, 폴 호머 교수를 만나 키르케고르, 쇼펜하우어 등을 배우게 된다. 특히 키르케 고르와 쇼펜하우어는 현각 스님이 불교에 입문하는 데 있어 간접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두 사람은 매우 비판적인 사람인데 불교의 가르침에 아주 깊은 찬사를 보내었다. 쇼펜하우어는 자신 철학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불교라고 말한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말년에 자기 책상 위에 불상을 모셔놓고 있었다고 한다. 쇼펜하우어 뿐 아니라 니체, 랠프월도에머슨, 헨리데이비스소로도 불교에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현각 스님은 키르케 고르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으면서 불교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독일철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간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어학 연수원에 등록하여 공부하던 중 철학과 학생 옌츠를 만나 불교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파리로 가서 영어와 독일어를 가르치다가 미국의 초월 주의 철학운동 주창자인 에머슨을 공부하고 초월 주의에 대해 배운다. 에머슨은 하버드 대학원에서 축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날의 연설은 ‘신학대학원 축사’라는 고유 명사로 명명되었다. “예수님은 신이 아니다. 단지 우리 인간들이 그를 신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본성, 진리, 지혜다. 인간들이 예수를 신으로 만들어, 즉 우리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대상으로 만들어 존경하고 숭배하는 것은 우리의 실수다. 예수님은 이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지만, 그는 단지 인간이다. 나와 여러분들처럼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다.” 라고 연설하였다. 그날 연설 이후 하버드 신학대학원에 출입이 금지 되었지만 생애 말엽 하버드에서 가장 존경 받는 철학자의 한 사람이 되었고 하버드 철학관 홀은 ‘에머슨 홀’로 명명도기에 이르렀다.
현각 스님은 에머슨의 유명한 에세이 <초월주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다시 불교를 접하게 된다. 그는 다시 갈등을 하게 된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무한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지만 쇼펜하우어, 에머슨, 키르케고르는 자신에게 예수님의 진리는 내 속에서 찾으라고 재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 동안 꿈꿔왔던 수도사가 되는 것을 포기한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한다. 대학원 학비를 벌기 위해 뉴욕에서 취직하였지만 늘 허무함에 매일 밤 술을 지낸다.
그 동안 책으로만 불교를 접한 상태에서 삶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법률사무소에 일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친구도 많이 사귀면서 삶은 그럴듯해 보였지만, 행복하진 않았다. 그가 고민한 것은 신의 존재와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이었다. 그 중 가장 큰 고민은 ‘나는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현각 스님은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마사토시 나가토미 교수의 불교 강좌를 들으면서 불교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특히 숭산 스님의 강의를 듣고 난 후 한국 불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숭산 스님이 운영하는 케임브리지 선센터에 들어가 단체수행을 시작하게 된다. 자유분방한 미국인이 갑작스럽게 단체생활을 한다는 것은 많은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점차 단체생활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보게 되면서 다른 사람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싫다 좋다는 가치판단을 놓아버리면 조화를 이루며 잘 살아갈 수 있지만 내 견해, 내 상황에 집착하면 내 주변의 조건과 상황은 금세 나빠진다는 것이다. 즉 조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나를 버리지 않으면 스트레스와 고통이 나타난다.
그 해 11월 고대하던 한국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선불교 수행하기 위해 신원사에서 동안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