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理와 求道者/교회사관련

[스크랩] 신앙, 신학, 교리

心中火熱頭腦冷精 2013. 3. 2. 22:42

95-150

사도교부

±95

<클레멘스의 첫째 편지>, <디다케>

±115

이그나티우스의 일곱 편지 (117년 로마에서 순교 이전): 단일감독제의 주장자, 성찬=불멸의 약

±140

헤르마스의 <목자>: 두번째 회개. <바나바서>

±160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

±150

사도신경: 누가복음 2장과 빌립보서 2장이 제2조항의 기초; 동방에서는 고린도후서 8장과 누가복음 2, 빌립보서 2장이 기독론적 신앙고백의 기초 (불확실하지만 아마도 3세기에 처음으로)

150-300

영지주의와의 투쟁,

200년 이후

주요 저작으로는 이레나이우스의 <이단반박>

220년 이후

테르툴리아누스 <이단자 규정론>, 히폴리투스와

254

오리게네스

140-170

변증가의 시대. 콰드라투스, 아리스티데스

(172년 이후)

타티아노스: <그리스인에게 주는 연설> <디아테사론>

(177년 이후)

아테나고라스,

†±165

순교자 유스티누스: <변증서> <트리폰과의 대화>, 그리스적인 로고스개념과 플라톤주의의 수용

178년 경

이교도의 기독교 반박서: 켈소스의 <참된 강론>

200-250

초기 가톨릭 교부

이레나이우스: 폴리카르포스의 제자, 178년 이후 리옹 주교; <이단반박> <사도적 선포의 논증>

220년 이후

테르툴리아누스: 경륜적 삼위일체론, 종속론적 기독론, <변증서> <이단자 규정론> <마르키온 반박> <프락세아스 반박> <순결론>

(235)

로마의 히폴리투스: <모든 이단 반박> <사도전승>

258

키프리아누스 (카르타고의 순교자): <교회의 일치> <배교론> <서한집>

215년 이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아마도 세례교육학교의 지도자: <그리스인에 대한 권고> <교육자> <양탄자> <구원받은 부자는 누구인가>

254

오리게네스, 카이사레이아 세례교육학교의 지도자: <원리론> <헥사플라> <켈소스 반박>

190-300

단일신론자들이 로고스 기독론을 유일신론의 위협으로 공격하다

1) 역동적 혹은 양자론적 단일신론: 비잔티움의 테오도토스와 그 아들 (190년 이후 로마에서 활동): 그리스도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권능 (뒤나미스)의 대표자; 사모사타의 파울로스 (260년 안티오케이아의 감독)는 단일신론에 속하진 않지만 268년에 단일신론자로 정죄되다

2) 양태론적 단일신론: 사벨리오스 (200년 경):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시되어 그의 가르침은 "성부수난설" (Patripassianism)으로 알려진다

260년 경

로마의 디오니시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오스, 기독론 논쟁

255-257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이단자 세례 논쟁

276(?)

마니

318-381

아리오스 논쟁 (성부와 성자의 관계)

318

아리오스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의 파문: 그리스도는 시간 이전의 피조물

325

니케아 공의회가 최초의 세계공의회가 황제에 의해 소집되어 아리오스의 정죄 확인,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본질 (호모우시오스)이라는 가르침을 선포; 니케아파의 지도자는 아타나시오스이고 반대파의 지도자는 오리게네스의 제자인 니코메데이아의 에우세비오스이다.

362

알렉산드리아 교회회의에서 처음으로 동일본질론자 (니케아파)와 유사본질론자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다.

(379)

카파도키아 교부인 바실레이오스

(390)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394년 이후)

니사의 그레고리오스의 중재 하에

381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2차 세계공의회)에서 니케아 교리가 확정되다.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라고 불리우기도 하며 예전에서 “니케아신경”이란 이름으로 고백된다.

373

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의 감독(397)이 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스승으로 저서로는 성서주석, 세례자교육서 (<신경의 설명> <성례론> <신비론>), 찬양 등이 있다.

354-430

아우구스티누스: 칭의를 서구신학의 중심주제로 삼다. 주요 저작: <아카데미아학파 반박> (386 청년기 저작), <삼위일체론>, <신국> (413-426); 논쟁서: 마니교도-<자유의지론> <파우스투스 반박>, 도나투스파-<세례론> <가우덴티우스 반박>, 펠라기우스파-<영과 문자>, <자연과 은총>; 성경주석; 자전적: <고백록> (397-400); <퇴고> (427) 

411-431

펠라기우스 논쟁: 예정론과 자유의지의 능력

418

펠라기우스는 카르타고에서

431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정죄되다

±429-529

-펠라기우스 논쟁: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공로, 하나님의 예정과 예지

529

오랑주 교회회의가 아를의 카이사리우스의 영향 하에 결정: 은총은 모든 인간적 공로 이전에 임한다 (-아우구스티누스주의)

428-451

기독론 논쟁: 그리스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논쟁

428-431

첫번째 단계: 네스토리오스 논쟁: 네스토리오스는 예수의 인성 (마리아는 크리스토토코스)을 강조하고 인성과 신성을 연합 (coniunctio), 결합 (synapheia)이란 용어로 제시.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고 본성적 합일 주장. 마리아는 테오토코스이다.

431

에페소스 공의회는 키릴로스의 의미에서 결정하다.

448-451

두번째 단계: 에우티케스 논쟁: 에우티케스가 단성론적으로 가르치다. 레오 교황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의미에서 양성론적 가르침으로 에우티케스에 대적하다 (두 본성, 한 인격)

449

에페소스 교회회의가 에우티케스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리다 (레오에 의해 “강도회의”라고 명명되다)

451

칼케돈 공의회 (4차 세계공의회). 황제의 영향 하에 양성론적인 결정,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오스를 파문. 단성론파 교회가 형성되다

476-681

단성론 논쟁

476

첫 번째 단계: 바실리스쿠스 황제 회람서를 통해 칼케돈의 결정을 철회하려 노력하다. 반란

482

제논 황제가 <헤노티콘>을 통해 일치를 시도하다. 결과: 교황 펠릭스 3세가 동방을 파문

484-519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최초의 분열

519-533

두 번째 단계: 하나님 수난 논쟁: 은밀한 단성론적 시도: “삼위 중 한 분이 육신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484-519

세 번째 단계: 삼장 논쟁

553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5차 세계공의회)에 의해 해결. 칼케돈 신앙의 키릴로스적인 해석(엔휘포스타시스)을 비잔티움의 레온티오스의 지도 하에 인정

  번째 단계:

622-638

단일활동 논쟁과

638-681

단의론 논쟁: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의 활동(작용) 혹은 의지를 가졌는가 혹은 두 활동(작용), 의지를 가졌는가

681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6차 세계공의회)를 통해 두 의지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결정

787

성화상숭배논쟁이 니케아 공의회 (7차 세계공의회)에 의해 성화상공경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결정: 공경하지만 (proskynesis), 예배 (latreia)는 아니다

±500

아레오파고스의 디오니시오스: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이름을 사용하여 신비적, -플라톤주의적 저작 저술: <하나님의 이름들> <신비신학> <하늘의 위계> <교회의 위계>

 

출처 : 교회사자료와 개관
글쓴이 : 서원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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