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150 |
사도교부 |
±95 |
<클레멘스의 첫째 편지>, <디다케> |
±115 |
이그나티우스의 일곱 편지 (117년 로마에서 순교 이전): 단일감독제의 주장자, 성찬=불멸의 약 |
±140 |
헤르마스의 <목자>: 두번째 회개. <바나바서> |
±160 |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 |
±150 |
사도신경: 누가복음 2장과 빌립보서 2장이 제2조항의 기초; 동방에서는 고린도후서 8장과 누가복음 2장, 빌립보서 2장이 기독론적 신앙고백의 기초 (불확실하지만 아마도 3세기에 처음으로) |
150-300 |
영지주의와의 투쟁, |
†200년 이후 |
주요 저작으로는 이레나이우스의 <이단반박> |
†220년 이후 |
테르툴리아누스 <이단자 규정론>, 히폴리투스와 |
†254 |
오리게네스 |
140-170 |
변증가의 시대. 콰드라투스, 아리스티데스 |
(†172년 이후) |
타티아노스: <그리스인에게 주는 연설> <디아테사론> |
(†177년 이후) |
아테나고라스, |
†±165 |
순교자 유스티누스: <변증서> <트리폰과의 대화>, 그리스적인 로고스개념과 플라톤주의의 수용 |
178년 경 |
이교도의 기독교 반박서: 켈소스의 <참된 강론> |
200-250 |
초기 가톨릭 교부 |
이레나이우스: 폴리카르포스의 제자, 178년 이후 리옹 주교; <이단반박> <사도적 선포의 논증> | |
†220년 이후 |
테르툴리아누스: 경륜적 삼위일체론, 종속론적 기독론, <변증서> <이단자 규정론> <마르키온 반박> <프락세아스 반박> <순결론> 등 |
(†235) |
로마의 히폴리투스: <모든 이단 반박> <사도전승> |
†258 |
키프리아누스 (카르타고의 순교자): <교회의 일치> <배교론> <서한집> |
†215년 이전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아마도 세례교육학교의 지도자: <그리스인에 대한 권고> <교육자> <양탄자> <구원받은 부자는 누구인가> |
†254 |
오리게네스, 카이사레이아 세례교육학교의 지도자: <원리론> <헥사플라> <켈소스 반박> |
190-300 |
단일신론자들이 로고스 기독론을 유일신론의 위협으로 공격하다 |
1) 역동적 혹은 양자론적 단일신론: 비잔티움의 테오도토스와 그 아들 (190년 이후 로마에서 활동): 그리스도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권능 (뒤나미스)의 대표자; 사모사타의 파울로스 (260년 안티오케이아의 감독)는 단일신론에 속하진 않지만 268년에 단일신론자로 정죄되다 | |
2) 양태론적 단일신론: 사벨리오스 (200년 경):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시되어 그의 가르침은 "성부수난설" (Patripassianism)으로 알려진다 | |
260년 경 |
로마의 디오니시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오스, 기독론 논쟁 |
255-257 |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이단자 세례 논쟁 |
†276(?) |
마니 |
318-381 |
아리오스 논쟁 (성부와 성자의 관계) |
318 |
아리오스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의 파문: 그리스도는 시간 이전의 피조물 |
325 |
니케아 공의회가 최초의 세계공의회가 황제에 의해 소집되어 아리오스의 정죄 확인,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본질 (호모우시오스)이라는 가르침을 선포; 니케아파의 지도자는 아타나시오스이고 반대파의 지도자는 오리게네스의 제자인 니코메데이아의 에우세비오스이다. |
362 |
알렉산드리아 교회회의에서 처음으로 동일본질론자 (니케아파)와 유사본질론자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다. |
(†379) |
카파도키아 교부인 바실레이오스 |
(†390) |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
(†394년 이후) |
니사의 그레고리오스의 중재 하에 |
381 |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제2차 세계공의회)에서 니케아 교리가 확정되다.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라고 불리우기도 하며 예전에서 “니케아신경”이란 이름으로 고백된다. |
373 |
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의 감독(†397)이 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스승으로 저서로는 성서주석, 세례자교육서 (<신경의 설명> <성례론> <신비론>), 찬양 등이 있다. |
354-430 |
아우구스티누스: 칭의를 서구신학의 중심주제로 삼다. 주요 저작: <아카데미아학파 반박> (386 청년기 저작), <삼위일체론>, <신국> (413-426); 논쟁서: 마니교도-<자유의지론> <파우스투스 반박>, 도나투스파-<세례론> <가우덴티우스 반박>, 펠라기우스파-<영과 문자>, <자연과 은총>; 성경주석; 자전적: <고백록> (397-400); <퇴고> (427) |
411-431 |
펠라기우스 논쟁: 예정론과 자유의지의 능력 |
418 |
펠라기우스는 카르타고에서 |
431 |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정죄되다 |
±429-529 |
반-펠라기우스 논쟁: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공로, 하나님의 예정과 예지 |
529 |
오랑주 교회회의가 아를의 카이사리우스의 영향 하에 결정: 은총은 모든 인간적 공로 이전에 임한다 (반-아우구스티누스주의) |
428-451 |
기독론 논쟁: 그리스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논쟁 |
428-431 |
첫번째 단계: 네스토리오스 논쟁: 네스토리오스는 예수의 인성 (마리아는 크리스토토코스)을 강조하고 인성과 신성을 연합 (coniunctio), 결합 (synapheia)이란 용어로 제시.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고 본성적 합일 주장. 마리아는 테오토코스이다. |
431 |
에페소스 공의회는 키릴로스의 의미에서 결정하다. |
448-451 |
두번째 단계: 에우티케스 논쟁: 에우티케스가 단성론적으로 가르치다. 레오 교황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의미에서 양성론적 가르침으로 에우티케스에 대적하다 (두 본성, 한 인격) |
449 |
에페소스 교회회의가 에우티케스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리다 (레오에 의해 “강도회의”라고 명명되다) |
451 |
칼케돈 공의회 (제4차 세계공의회). 황제의 영향 하에 양성론적인 결정,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오스를 파문. 단성론파 교회가 형성되다 |
476-681 |
단성론 논쟁 |
476 |
첫 번째 단계: 바실리스쿠스 황제 회람서를 통해 칼케돈의 결정을 철회하려 노력하다. 반란 |
482 |
제논 황제가 <헤노티콘>을 통해 일치를 시도하다. 결과: 교황 펠릭스 3세가 동방을 파문 |
484-519 |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최초의 분열 |
519-533 |
두 번째 단계: 하나님 수난 논쟁: 은밀한 단성론적 시도: “삼위 중 한 분이 육신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
484-519 |
세 번째 단계: 삼장 논쟁 |
553 |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제5차 세계공의회)에 의해 해결. 칼케돈 신앙의 키릴로스적인 해석(엔휘포스타시스)을 비잔티움의 레온티오스의 지도 하에 인정 |
네 번째 단계: | |
622-638 |
단일활동 논쟁과 |
638-681 |
단의론 논쟁: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의 활동(작용) 혹은 의지를 가졌는가 혹은 두 활동(작용), 의지를 가졌는가 |
681 |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제6차 세계공의회)를 통해 두 의지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결정 |
787 |
성화상숭배논쟁이 니케아 공의회 (제7차 세계공의회)에 의해 성화상공경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결정: 공경하지만 (proskynesis), 예배 (latreia)는 아니다 |
±500 |
아레오파고스의 디오니시오스: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이름을 사용하여 신비적, 신-플라톤주의적 저작 저술: <하나님의 이름들> <신비신학> <하늘의 위계> <교회의 위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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