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理와 求道者/교회사관련

[스크랩] 중세 이단의 성장

心中火熱頭腦冷精 2013. 3. 2. 22:43

중세 이단의 성장

                                 중세시대 가장 넓게 확산된 종파인 카타리파(알비파)는 원래 교회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급진적인 이원론적 공동체는 10세기경 불가리아에서 일어나고 1140년부터 발칸반도에 확산된 보고밀파로 소급될 수 있다.

1140년 경                    서방에는 카타리파가 형성되었고, 1167년 비잔티움의 니케타스에 의해 급진화되었지만 1250년 이후에는 영향력을 상실하다

1176                           리용의 상인 발데스는 청빈의 이상을 고수하여 왈도파의 공동체를 설립하다; 이 공동체는 1184년 루키우스 3세에 의해 파문되었지만 빠르게 확장하다

1210년 경                    랑고바르트의 가난한 자들이 이 공동체로부터 분리하다

 

1184                           이미 바바로사는 이단자들을 황제의 금령으로 위협하다.

1045                           뤼티히의 와조 감독은 이단자들의 처형이 비기독교적이라고 정죄하지만

1215                           감독 종교재판이 기초되고 이단자에 대한 금령을 주도하다

1209(-1229)                 인노켄티우스 3세가 남서 프랑스의 알비파에 대한 십자군을 주도하다

1231                           그레고리우스 9세가 교황청 종교재판을 창설하다. 프랑스와 독일(프리드리히 2)는 이단에 대한 사형이 법제화되다.

1230 이후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두 집단으로 분열하다: 콘벤투알회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려 하고, 신령파는 프란체스코의 정신을 실현하려 하다. 신령파는 요아킴주의자의 영향을 받았다(피오레의 요아킴(1201/1202)에 의해 영향을 받은 묵시적인 공동체로 1260년에 성령의 시대의 도래를 기대하다).

(1204)                       베나의 아말리히의 영향 하에 신비적이고 자유로운 집단이 출현하고 이는 아말리히파라고 불린다. “자유로운 성령의 형제와 자매 13세기 중엽부터 자신들의 사상을 전파하다

1384                          14세기에는 민족적이고 교회개혁적인 교황청에 대한 반대운동이 존 위클리프(옥스포드)의 주도 하에 성장하다. 주저: <신적인 통치>(교황권으로부터 왕권의 독립); <삼부작>(현재 교회는 적그리스도적이다); 신적인 법으로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다. 그의 제자들인 롤라드파는 1401년 이후 유혈탄압되다. 위클리프의 사상은 보헤미아의 요한 후스에게 영향을 주었고

1415                           후스는 콘스탄스 공의회에서 화형되지만 체코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다. 그의 정죄는 반란을 가져와

1419-1436                    후스전쟁이 일어나다. 하지만 작은 집단은 보헤미아 형제단 만이 살아남아 1467년 이후로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형제단으로 발전하고 후에 루터와 접촉하여 헤른훗의 형제단의 핵이 되다

 

출처 : 교회사자료와 개관
글쓴이 : 서원모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