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족이 세운 수메르(상)
수메르는 12한국 중의 하나... 우리나라 말과 일치하는 것은 당연
신화를 뜻하는 그리스어 미토스mythos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이야기’라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좀 더 깊은 의미로서 ‘틀’이나 ‘안’을 가리킨다.
즉 신화와 역사가 하나의 틀에 의하여 반복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신화는 매우 중요하다.
대체로 민족이 모시는 신들은 조상신이다.
옛날 사람들에게는 조상신을 모신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민족이 이동할 때마다 반드시 조상신도 함께 따라 다니면서
그 신화와 신전도 함께 옮겨지게 된다.
따라서 신화의 이동 통로를 조사하면 그 민족의 이동 통로를 조사할 수가 있다.
민족은 이동하면서 자신들이 살았던 고향의 도시나 강이나 산의 이름을 그대로 반복하여 사용한다.
따라서 신화 속에서 나오는 지명과 그 고장의 지명이나 강산의 이름이 일치한다해도 그곳이 신화의 원 발생지라고 말할 수가 없다.
특히 언어와 신화의 일치 등을 통하여 최초 신화가 발생한 곳을 찾을 수가 있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점령하면 정복된 민족은 피지배계층이 된다.
즉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은 각기 다른 민족이다.
따라서 지배계층이 믿는 신(조상신)과 피지배계층이 믿는 신(조상신)은 대체로 다르다.
마야의 주기표에 의하면 BC 23,613년(25,620년 전)경부터 지금까지 지구는 5번의 주기가 반복되었다.
즉, 5번씩이나 동일한 사건, 동일한 인물이 반복되어 나타났음을 말한다.
우주의 생각들과 회전은 우리 안에 있는 신적인 부분들과 유사하다.
이러한 우주적 질서를 이집트인들은 마트Mart라고 불렀으며 인도인들은 다르마Dharma, 중국에서는 도道라고 불렀다.
지상에서의 삶은 천상에서 벌어지는 향연의 질서를 가능한 완벽하게 인간의 몸속에 반영하는 것이다.
동이족이 세운 나라 수메르
수메르에 대한 이야기는 훨씬 뒤쪽에 배치되어야 하지만 필자가 서술하는 내용 중 상당부분이 수메르 기록에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메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만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보인다.
수메르에서는 엄청난 양의 점토판이 발견되었는데 신화나 창세이야기로부터 당시의 생활을 전하는 수필, 일기 등도 많이 발견
되었다.
수메르의 창세신화를 기록한 기록물을 ‘에뉴마 엘리쉬’라고 부른다.
이 기록물은 바빌로니아시기에 아카드어로기록된 것이나 수메르의 전설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에뉴마’는 ‘마’가 세계 공통적으로 어머니를 뜻하는 말이므로 지구 최초의 모신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보인다.
‘엘리쉬’는 ‘엘El’+ ‘이쉬Ish’로서 ‘엘El'은 하늘에서 온 사람을 뜻하는 일반명사이고 '이쉬Ish'는 화살시矢로서 이족夷族과 관련된
단어다.
즉 화살을 상징으로 하는 반신반마의 켄타우리스 족을 이夷라고 표현했으며, ‘에누마 엘리쉬’는 수메르의 주신이었던 엔키의
아들 ‘마루둑’에 대한 찬양을 주로 하고 있다.
‘높은 곳에서’라는 뜻으로 처음 시작하는 귀절을 따서 이름 붙였다고는하나 ‘에누마 엘리쉬’는 그들의 최고신 ‘마루둑’의 다른
이름으로 보인다.
《성서》라는 단어 bible은 그리스어 bibilon에서 유래한 것으로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에 글자를 기록한 것을 말한다.
그 어원은 지금의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40km북쪽의 지중해에 면한 고대도시 비블로스byblos로 책이나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했던 파피루스의 심이라는 뜻이다.
바빌론bibilon은 밥일논food+producing field이며 갈대아chaldea는 갈대+밭이라고 김효신님은 주장한다.
(김효신님은 천주교 신부님으로서 세계의 고대어에 능통하신 분이다)
원래는 ‘신들의 문’이라는 뜻이다.
고대 히브리 《성서》 창세기의 제목은 ‘베레쉬트’bereshith로서 ‘태초에’, ‘처음에’ 라는 말이다. ‘레쉬트’reshith는 히브리어로
‘처음’, ‘시작’, ‘우선’이라는 뜻으로 고대 남 메소포타미아에 살던 수메르인들이 ‘위’, ‘처음’, ‘앞’, ‘북쪽’ 등의 뜻으로 ‘머리’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시초이다.6)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의 이름이 ‘A 베레쉬트’ 즉 ‘에베레쉬트’인 점을 생각해 보자.
A는 알파벳의 첫 글자이며, 에베레스트는 즉, ‘수머리’가 되고 이는 ‘수메르’와 같다.
물론 에베레스트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였지만 이름에는 반드시 연원이 있는 것이다.
아카드어로 된, 길가메쉬 서사시가 발견되기 전만해도 <창세기>의 홍수이야기는 《성서》가 원형인 줄 알았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의 전승이야기가 발견된 후에 또 수메르원전에 해당하는 원형이 발견되었다.
현재의 남아있는 기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수메르의 점토판기록이다.
점토판기록이 발견되고 해석됨으로 해서 성경의 원본이 바로 수메르 점토판기록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성서》 내용의 기원은 수메르의 점토판기록이며,수메르신화나 기록의 원형은 모두가 서안을 중심으로 한 중국대륙이
원형이다.
우리민족은 ‘배달(해달)민족’이다.
우리민족의 조상은 환인桓因님이시고 마고(가이아)와 한 몸이었다.
수메르신화에서는 Anki에 해당하고 《기억여행》의 기록에는 Ma-Ra/Ha-Ra로서 남녀합체의 신이었다.
티벳불교인 탄트라교에서 원래 태초의 종교인 본교本敎의 신이며 인도에서는 브라흐마와 사라의 합체신이다.
티벳불교에서는 남녀합체인 합체불로 표현되고 있고, 네팔등지에서는 달과 태양이 함께 있는 그림 또는 조각으로 표현되고 있다.
즉 달신과 태양신이 함께 합체의 몸이 된 신이 바로 환인桓因이다.
우리민족을 ‘배달민족’이라고 하는데 배달이란 ‘해달’의 뜻이다.
일관을 해씨解氏, 월관月官을 월씨月氏라고 궁직으로 불러오다가 성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서양기록에는 VaiDal Haithali+tesHeph+ thali tes라고 불렀다.
배달민족 중 일부인 월지月氏국 사람들이 세운 나라가 우르와 수메르였음을 알 수가 있다. 김효신《상고연구자료집》
《한단고기》에는 한국은 12개의 연방국가였는데 그 중에는 ‘수메르’와 ‘우르’가 있었다.
BC 8,000년을 전후하여 티그리스강과 유프라데스강의 비옥한 유역에서 일련의 혁신이 일어났다.
도예, 직조, 영주가옥(천막이 아닌), 조직적공동체, 곡물과 물품의 거래, 달력, 수학, 그리고 특히 문자의 등장을 말한다.
이러한 놀라운 혁신의 원동력은 농업의 발달이다.
수메르를 세운 민족들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플레이야데스인 셈야제의 증언에는 제우스(지소)의 후손인 백인들이 수메르를 공격할 때, 수메르인들은 원래 검은 피부에 몸이 큰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전쟁을 하지 않고 원래의 고향인 북쪽의 내륙으로 이동하였다고 되어
있다.
옛 기록에 시리우스인들의 피부는 원래 푸른색이었다.
‘이시스’라는 여신의 이름이 ‘시리우스’와 동일하다.
인도의 검은 칼리야말로 무서운 어머니로서 신들의 어머니인 마고이다.
그런데 햇볕을 받아서 검은색으로 변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이집트와 수메르 등의 기록과 신화에는 시리우스와 관련된 기록이 많다.
따라서 그들은 청인종인 청궁씨의 후손으로 보인다.
《부도지》의 기록으로는 청궁씨는 동쪽 문을 나가서 운해주로 갔다고 하였다.
청색은 동쪽을 상징하므로 천산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퍼진 종족이다.
운해주는 파미르고원의 동쪽 중원지역에서 시베리아의 동쪽 바다, 캄차카 반도까지의 땅이다.
우루는 흑룡강 북쪽에 있었는데 BC 8,000년 전후의 지구변동 때 몽골 고원 쪽으로 이동하여 동몽골 흑룡강 상 중류의 시베리아에
있다가 후에 점차 남하하여 부여의 옛 땅인 흑룡강남쪽으로 내려와 동몽골 흑룡강 상류를 경계로 남우루와 북우루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베리아가 추워지자 캄차카반도 지역의 구다천국과 우루국, 부여 등은 점차 남하하여 서요하와 북경일대에서 우리역사의 주축
세력을 이루게 된다.
이들 중의 일부와 수메르족이 서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남북으로는 몽골에서 인더스강 하류까지, 동서로는 티베트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큰 십자벨트(十字belt)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메르 왕조를 BC 3,378∼2,233=1,145년으로 또는 에렉(환인)왕조가 끝나고 우르(월신 복희)왕조 BC 3,378∼2,353 또는 기쉬
(염제신농/기자箕子)왕조가 끝나는 BC 1,730년으로 치고 있다.
수메르 기쉬왕조는 기자조선으로 보이며 흰두쿠쉬 등 지명도 모두 쿠쉬(기자)의 이름으로 딴 것으로 보인다.
수메르족은 BC 5,000∼4,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에 나타나서 BC 3,000년경부터 고도의 문명을 전하고 BC 2,000년경에 아모리인
에 멸망하여 사라졌는데 지금의 시리아 지역을 경유했다.
시리아 지역에 도착한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로 일부는 이동하고, 이집트 방향으로 진출해서 이집트 문명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리아’ 또는 ‘앗시리아’ 나라이름 역시 시리우스와 매우 관계가 있어 보인다.
앗시리아인들은 매우 호전적인 북쪽의 민족으로 BC 1,500~BC 1,100사이에 수메르지역을 점령했다.
그들은 매우 잔인했는데 신독국이라고 불렀던 잔인한 민족 한국과도 통한다.
수메르지역에서는 님루드(요 임금)라는 인물이 날개달린 인두황소로 표현되고 있다.
바빌론 우르 3.7m~2.7m에서 BC 3000년경의 대홍수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 아래서 신전, 탑, 채색그릇, 사륜마차, 가장 오래된 책으로 메워진 도서관 등이 발견되었다. 니느베에서는 21.1m~21.3m 침전물
깊이의 BC 3,000~4,000년경의 대홍수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우수주(牛首州 : 수메르국)의 앙골과 동생 장골이 난을 일으켜 서쪽 변두리 백성들이 피해를 입으니 부여후가 평안할 수가 없었다.
이에 웅가 충달을 보내 치게 하니 예후와 속진후(진번후)가 군사를 도와서 5년 만에 앙골을 평정할 수가 있었다. 《규원사화》<단군기>
위의 내용 역시 단군시기에도 우수주(수메르)가 조선의 영역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학자들은 윗 글의 우수주가 부여국의 근처에 있는 북경근처라 하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부여 역시 한때에는 천산 (우루무치)근처에 있었다가 점차 동으로 이동했다.
《한단고기》에는 한국桓國시대에 남북5만 리 동서2만 리의 땅이라 하였고 색부루단군 시기에도 5만 리의 땅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기록된 인류 최초의 법률 역시 수메르 인들이 만든 것이다.
우르남무라는 수메르 왕이 반포한 이 법률은 유명한 바빌론의 함무라비법전에 큰 영향을 남겼으며, 먼 훗날 모세의 법률을 특징
짓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유명한 표현이 이 함무라비 법전에 정확히 들어있는 말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단군시대의 팔조금법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매우 흡사하다.
함무라비는 자신이 동쪽에서 건너온 자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데, 다음의 내용은 함무라비가 단군이 임명한 왕 중 한명이었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마루둑’을 위대한 신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게 만들었을 때, 그들이 그 고귀한 이름을 바빌론에 선포하여 바빌론을 세계의
지역들 가운데 당할 곳이 없는 도시로 만들었을 때, 그러는 가운데 그를 위하여 그 기초가 하늘과 땅만큼 견고한 왕국을 세웠을 때,
그때 아누와 벨은 경건한 왕자이자 신들을 섬기는 자인 나 함무라비(BC 1,728~1,686)를 불러, 나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 땅의
의로움을 통치하게 하고, 사악함과 악을 일소하고,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억누르는 것을 막게 하고, 인류위로 해처럼 빛을 발하게
하고, 땅을 밝게 비추게 하고, 인류 복지를 증진시키도록 하였다.
Anu와 벨이 ‘함무라비’를 불러 통치하게 하였다.
Anu는 환웅-오시리스(BC 2,381년)에 해당되며 벨은 단군왕검/호루스(BC 2,333년)로 보인다.
마루둑/단군왕검/호루스(빛나는 산의 아들, 빛나는 우주의 아들, 위대한 주, 천지의 주)의 승천은 함무라비왕의 시대인 BC 2,150년
이다.
‘수메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검은 머리’와 ‘소머리’ ‘으뜸 산’ ‘수말/卒末=예맥濊貊-숙신肅愼-수 마을’이다.
첫째로 수메르란 ‘소머리’를 말하며 우르(UR)도 소를 뜻하는 말이다.
또한 우르는 월月과 발음이 같다. 따라서 달신이며 동시에 소의 신인 환웅(견우)을 뜻한다.
나중에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겠지만 지구의 수많은 고대국가에서의 신들은 모두 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따라서 소의 머리라는 뜻은 신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우두머리’ 역시 ‘소머리’를 뜻하고 있다.
수메르는 12한국 중의 하나였으므로 우리나라 말과 일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수메르라는 말은 우리말 ‘으뜸 산’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산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민족들은 자신들이 사는 땅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중심이 되는 산을 ‘수메르’라고 하였다.
수메르에서 ‘수’는 ‘흰’이 구개음화된 것이기도 하므로 흰머리산(백두산)이다.7) 히말라야산은 ‘힌마리산’으로 흰머리산과 비슷하다.
인도에서 신들이 사는 신성한 산의 이름이 ‘메루’산이다.
‘메루’는 ‘머리’ 또는 ‘산’이다. BC 4,000∼BC 3,000년경은 인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긴밀하게 접촉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BC 2,300년 경 유물로 추정되는 원통형 인장에 새겨진 배는 이 시기 이전부터 수메르와 인더스강 유역의 모헨조다르 문명권은
바다로 접촉했음을 알 수 있다.
BC 3,500~BC 2,800년까지 우르크기 문화이고 젬네트나스리기(BC 2,800~BC 2,700)경에 도시가 출현한다.
수메르의 여왕 슈브엘(BC 2,900년 경)의 무덤 속에서 발굴된 악기 끝에 소머리가 그려져 있다.
우르왕비의 우아한 황소머리 리라(거문고), 수염 난 황소와 거문고자리의 상징인 리라는 직녀인 마고의 상징이다.
수염이 달린 황소머리, 메소포타미아 왕권의 일관된 상징으로 나타나는 수염난 황소와 염소상은 이집트신화 속에서 염제신농을
연상시키고 있다.
마고와 직녀는 모두 직조기술자를 뜻하는데 수메르는 직조기술이 발달해 옷을 만들고 옷에 물들여 입었다.
‘리라’는 ‘해달’의 뜻이며 이는 ‘밝달’ ‘배달’과 동일한 뜻이다.
군장의 상징이던 비파형 청동 검을 기억하자.
비파형 청동검은 전쟁무기가아니라 군장의 신분과 계통을 상징하는 상징물이었다.
이를 비파형으로 만든 것은 그가 라이라(거문고자리 베가)에서 온 우주인의 후예라는 뜻이다.
수메르는 혈통적, 언어적으로 고산지대 또는 중앙아시아 고원에서 내려온 듯 하다.
한국어는 알타이어 기층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알타이어계통 언어와 친근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수메르어는 한국어와 동일한 교착어로서 어근을 같이한다.
다음으로 문법 구조에 있어서 수메르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이는 영어와는 다르고 우리말과는 같은 구조이다.
《삼국사기》에는 고대 우리말의 수사(數詞)가 남아 있고 수메르의 수사와 같은 부분이 있다.
수메르어와 중국어는 같은 뜻을 가진 단어들의 소리, 글씨가 같은 것이 많다.
한문처럼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의 여섯 단계로 발전한 것이 같고 두 나라 말이
상당수 같은 단어를 공유하고 있다.
또한 하나의 문자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서 ‘물’을 나타내는 문자는 ‘강’, ‘비’, 또는 ‘씻다’ 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별’ 을 나타내는 문자는 ‘하늘’, ‘신’, ‘높다’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또, 한가지의 중요한 것은 그림 문자가 소리 문자 (phonogram)로 발전된 것이다.
또한 애비, 애미, 애기, ‘아이고아이고’(장례치를 때 곡), 고수레, 누리, 누이, 등 우리말과 동일한 단어들이 많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발굴된 채색토기가 중국의 섬서성, 감숙성에서 출토된 채색토기와 비슷하다.
수메르와 섬서성 주변의 유사성은 토지에 물을 대는 관개시설의 유사성,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의 존재, 바빌로니아 건축의 벽돌
쌓는 양식과 만리장성의 망루에서 보이는 양식의 일치, 양자 모두 점성술이 발달해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프랑스의 데리안 드
라크베르는 수메르민족의 한(漢)민족 기원설을 주장했다. (하)로 계속.
채희석 판스퍼미아 연구원장r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